KALAYAMA – Where Purifying Fire Transcends the Limits of Life


[ Studies of Divine Garment Form ]
These are one-month croquis project conducted prior to the full design development of KALAYAMA, aimed at exploring the sculptural core of the costume embodied by deities. The sketches are based on observations and reinterpretations of garments worn by various divine figures, including Buddhist statues.
这是在正式开始 KALAYAMA 设计之前,为探索神像所承载的服装造型核心而进行的为期一个月的速写研究项目。这些草图源自对包括佛像在内的多种神像服饰的观察与再诠释。
본격적으로 칼라야마를 디자인하기 전, 신상이 지닌 의상의 조형적 코어를 탐구하기 위해 한 달간 진행한 크로키 프로젝트입니다. 불상을 비롯한 다양한 신상들이 착용한 의상 관찰하고 재해석한 스케치들입니다.
これは KALAYAMA の本格的なデザインに着手する前に、神像が宿す衣装の造形的コアを探るため、約一か月間にわたって行われたクロッキープロジェクトです。仏像を含むさまざまな神像が纏う衣装を観察し、再解釈したスケッチを収録しています。

[ The Birth Story of KALAYAMA ]
The sale of KALAYAMA has officially concluded.
However, as this work marked a significant turning point for me as a creator, it felt insufficient to end it with a simple full stop. For this reason, I wish to leave a record of the personal memories that formed the foundation of the piece—memories that could not be contained within the earlier concept descriptions.
The origin of KALAYAMA lies in long-held tastes and experiences from my childhood. Influenced by my parents, I frequently visited museums, historical sites, and Buddhist temples from a young age. The southern region of the Korean Peninsula where I grew up preserved its historical relics and artifacts relatively well compared to the metropolitan area, offering an abundance of things to observe.
Among them, the most familiar presence was that of Buddhist statues. Introduced during the Three Kingdoms period and later adopted as the state religion during the Goryeo dynasty, Buddhist art is inseparable from Korean identity. As a result, countless works emerged, forming a distinctly Korean tradition of Buddhist sculpture.
Korean Buddhist statues typically bear gentle smiles or silent expressions, their postures calm and unmoving. Neither enraged nor exuberant, they can be seen as visualizations of nirvana—a state in which emotional fluctuation has ceased. While this consistent composure may present a gift of peace to some, it became a source of doubt for me as a child filled with varied thoughts and emotions.
“Humans experience joy, anger, and sorrow. But if these statues are shaped like humans, why do they all look so uniformly dull?”
By my teenage years, the “serene peace” offered by these precious, tranquil artifacts had already reached a lethal dose.
KALAYAMA 的销售已正式结束。
然而,这件作品作为创作者生涯中的重要分水岭,仅以句号收尾仍让我感到遗憾。因此,我希望在此留下那些未能写入既有概念说明、却构成作品根基的个人记忆。
KALAYAMA 的起点源于我长久以来的审美倾向与童年经历。自幼受到父母影响,我频繁造访博物馆、历史遗址与佛教寺院。我成长的韩国南部地区,相较首都圈,保留了更多历史遗迹与文物原貌,也因此拥有极为丰富的观察对象。
其中最为熟悉的,便是佛像。佛教美术自三国时代传入韩国,并在高丽时期成为国教,其发展几乎与韩国的文化认同密不可分。由此诞生了大量作品,也形成了具有高度独立性的韩国佛教美术体系。
韩国佛像大多带着含蓄的微笑或沉默的神情,姿态静止安然。它们既不愤怒,也不纵情欢笑,可视为情感波动已然止息的“涅槃(Nirvana)”之视觉化呈现。这种始终如一的姿态,或许是和平的赠礼,但对于思绪纷繁的童年时期的我而言,却成为怀疑的对象。
“人类有喜悦、愤怒和悲伤。可这些佛像明明长着人的样子,为什么看起来却始终如此单调乏味?”
到了青春期,那些“珍贵、宁静而美丽”的遗物所传递的“安稳的和平”,对我而言早已达到致死剂量。
KALAYAMA의 판매는 공식적으로 종료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창작자로서 귀중한 분기점이었기에, 이대로 마침표를 찍기에는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앞서 선보인 컨셉 설명에 담지 못했지만, 작품의 토대가 된 개인적인 기억들을 남기고자 합니다.
KALAYAMA의 시작은 오래된 취향과 유년기의 경험이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영향으로 박물관과 유적지, 그리고 불교 사찰을 자주 방문했습니다. 제가 나고 자란 한반도의 남쪽 지방은 수도권에 비하면 비교적 유적과 유물의 원형이 잘 보존된 편이었고, 그 덕분에 볼거리가 아주 많았습니다.
그중 가장 익숙했던 것은 '불상'이었습니다. 한국의 불교미술은 삼국시대에 유입되어 고려에 이르러 국교로도 채택되는 등, 한국의 정체성과 분리 불가능한 상생 관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만큼 불교미술 작품들이 많았고, 독자성이 깊은 한국만의 불교 미술이 발달했습니다.
한국의 불상들은 대체로 은은하게 웃거나 침묵하는 표정을 지녔으며, 동작 역시 정적입니다. 분노하지도, 박장대소하지도 않는 상태로, 감정의 파동이 멈춘 ‘해탈(Nirvana)’의 시각화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한결같은 자태는 누군가에게는 평화의 선물이겠지만,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품은 어린 저에게는 의심의 대상이었습니다.
'인간에게는 기쁨도, 분노도, 슬픔도 있어. 하지만 왜 이 불상들은 생긴건 인간을 닮았으면서 한결같이 지루한 모양이지?'
청소년기의 저에게 귀하고 고요하며 아름다운 유물들이 던지는 '안온한 평화'는 이미 치사량에 달해 있었습니다.
KALAYAMA の販売は正式に終了しました。
しかし本作は、創作者としての私にとって重要な分岐点となった作品であり、このまま句点を打つには惜しいと感じています。そこで、これまでのコンセプト説明には収めきれなかった、本作の礎となった個人的な記憶を記しておこうと思います。
KALAYAMA の出発点は、長年にわたる嗜好と幼少期の体験にありました。幼い頃から両親の影響で、私は博物館や史跡、そして仏教寺院を頻繁に訪れていました。私が育った朝鮮半島南部の地域は、首都圏と比べて遺跡や遺物の原形が比較的よく保存されており、その分、目にするものも非常に多かったのです。
中でも最も身近な存在だったのが「仏像」でした。韓国の仏教美術は三国時代に伝来し、高麗時代には国教として受容されるなど、韓国のアイデンティティと切り離せない関係にあります。その結果、多くの作品が生まれ、独自性の高い韓国仏教美術が発展しました。
韓国の仏像は、穏やかな微笑みや沈黙の表情を湛え、動きのない静かな姿勢をとるものが大半です。怒りも歓喜も表さず、感情の波動が停止した状態――すなわち「解脱(Nirvana)」の視覚化とも言えるでしょう。この一貫した佇まいは、ある者にとっては平和の贈り物かもしれませんが、多様な感情と思考を抱えていた幼い私にとっては、疑問の対象でした。
「人間には喜びも、怒りも、悲しみもある。なのに、姿は人に似ているのに、どうしてこれらの仏像はみんな同じように退屈に見えるのだろう?」
思春期の私にとって、「尊く、静かで、美しい遺物」がもたらす“安穏な平和”は、すでに致死量に達していたのです。

When we realize that the world before our eyes is not everything but merely a part, we become curious about the rest.
When we feast on peace, we dream of chaos.
because we are destined to live, we wonder about death.
In my childhood, I too could not be satisfied with a single world. For this reason, I became interested in Buddhist 'Hell Paintings (地獄図).' I vividly remember standing for a long time before temple murals depicting jailers in non-human forms driving sinners into flames and tormenting them. There was so much suffering and cruelty, and my heart was not at ease watching those scenes. However, I couldn't stop observing, believing that these 'dark things' were beings that must inevitably be explored for the balance of life.
Death, hell, suffering, flames...
Since then, I've always kept small 'hells' in a corner of every peace. It was a natural progression that I became interested in Japan's 'Myō-ō (明王)' statues, which sublimate the emotion of anger into enlightenment (解脱).
Then, by chance, I discovered Unkei (運慶), a master of Buddhist sculpture from Japan's Kamakura period (鎌倉時代), through an exhibition poster. His works possessed explosive emotion and power. They held the energy of the netherworld(冥界) that I had never encountered in decades. Last October, I traveled to Tokyo to see his works in person. This became the direct catalyst for KALAYAMA.
Below is a memo I recorded at the Ueno Museum exhibition hall, in front of Unkei's works:
"The expression of the seated Maitreya(弥勒坐像) is not compassionate. Eyes of insight that seem to pierce through whoever stands before it. His skin is not smooth. The golden light scattered across the face like brush strokes seems to declare him the ruler of both realms, encompassing a life that traverses between mud of real world and heaven.
The eyes of the monk standing to the left of Maitreya—the Seshin Bodhisattva (世親菩薩) statue—hold a tear-like radiance. He seems to tremble with anxiety while gazing at the seated Maitreya. Worry, fear, and wonder... This luster in the eyes, contrasted with the matte finish of the entire body, tells so many stories. Gloss within matte, that sorrow and vitality—about the countless emotions they may hold.
These statues have no life. Yet they are more alive than any human. By not being alive, they have gained eternal, inextinguishable vitality."
当你意识到眼前的世界并非全部,而只是一部分时,你会对其余的世界产生好奇。当你饱食和平,便会梦见混沌,
因为注定要活完一生,所以会对死亡感到好奇。
童年时的我也无法满足于单一的世界。正因如此,我开始对佛教的"地狱图"产生兴趣。我至今仍清晰记得,曾在寺庙壁画前久久伫立,那些壁画描绘着非人形态的狱卒将罪人驱入火焰中折磨的场景。那里有无数的痛苦与残酷,观看这些场景时我的心情并不平静。然而,我认为这些"黑暗之物"是为了生命的平衡而必须探究的存在,因此无法停止观察。
死亡、地狱、痛苦、火焰……
此后,我一直在每一份和平的一隅放置着小小的"地狱"。对愤怒之情升华为解脱的"明王"像产生兴趣,也是自然而然的过程。
后来偶然通过展览海报,我认识了日本镰仓时代佛教雕刻的巨匠运庆(運慶)。他的作品蕴含着爆发性的情感与力量,拥有我数十年来从未见过的冥界能量。去年10月,我前往东京亲眼观赏他的作品。这成为了KALAYAMA的直接契机。
以下是我在上野博物馆展览现场,在运庆作品前记录的笔记:
"弥勒坐像的表情并不慈悲。那洞察的眼神仿佛要看穿站在面前的人。他的皮肤并不光滑。脸上星星点点如笔触般散布的金光,仿佛宣告着他是两界的支配者,包容着往来于现实世界的泥泞与天堂之间的生命。
站在弥勒左侧的僧侣——世亲菩萨像的眼中有着泪光般的光彩。他似乎注视着弥勒坐像,因不安而颤抖。担忧、恐惧与惊叹……眼中的这抹光泽,与无光的全身形成对比,传递着太多的故事。无光中的有光,那悲伤与生动——关于它所蕴含的无数情感。
这些雕像没有生命,却比任何人类都更有生气。正因为没有生命,它们获得了永不熄灭的永恒生命力。"
눈앞의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일부에 불과하다는 걸 알면, 나머지 세상이 궁금해집니다. 평화를 폭식하면 혼돈을 꿈꾸고, 평생을 살아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죽음을 궁금해합니다.
어린 시절의 저 역시, 하나의 세계로는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불교의 '지옥도'였습니다. 인간이 아닌 형상의 옥졸들이 화염 속에 죄인을 몰아넣고 괴롭히는 장면을 표현한 사찰의 벽화앞에 한참을 서 있었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합니다. 그곳에 수많은 고통과 잔인함이 있었고, 그 장면을 보는 제 마음은 편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어두운 것'들은 삶의 균형을 위해 필연적으로 탐구해야 할 존재들이라는 생각에 관찰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죽음, 지옥, 고통, 화염...
그 후 줄곧 평화의 한켠에 작은 '지옥'들을 놓아두었습니다. 분노의 감정을 해탈로 승화한 일본의 '명왕'상들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지요. 그러다 우연히 전시 포스터를 통해 '운케이'라는 일본 가마쿠라시대 불교 조각의 거장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폭발적인 감정과 힘이 있었습니다. 제가 수 십 년 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명계의 에너지를 품고 있었습니다. 작년 10월, 저는 그의 작품을 직접 보기 위해 도쿄로 향했습니다. 이것이 KALAYAMA의 직접적 계기가 되었지요.
아래는 우에노 박물관의 전시회장에서, 운케이의 작품 앞에서 기록한 메모입니다.
" 미륵좌상의 표정은 자비롭지 않다. 앞에있는 자를 궤뚫어보는듯한 통찰의 눈빛. 그의 피부는 매끄럽지 않다. 얼굴 군데군데 붓터치처럼 맺힌 금빛이 진흙탕-천당을 오가는 생을 아우르며 두 영역의 지배자라 선언하는 듯 하다.
미륵상의 왼쪽에 선 승려-세신보살상의 눈에는 눈물같은 광채가 있다. 그는 미륵좌상을 보며 불안에 떠는 듯 하다. 걱정, 공포와 경이... 이 눈에 맺힌 광택이 무광의 전신과 대비되어 너무나도 많은 이야기를 전한다. 무광 속의 유광, 그 슬픔과 생동-그것이 지닐 수많은 감정에 대해.
이 상들에는 생명이 없다. 하지만 그 어떤 인간보다 살아 있다. 살아있지 않음으로써, 그들은 꺼지지 않는 영원한 생명력을 얻었다."
目の前の世界が全てではなく一部に過ぎないと知れば、残りの世界が気になります。平和を貪り食えば混沌を夢見て、生涯生きていかなければならないからこそ死を知りたくなります。
幼い頃の私も、一つの世界では満足できませんでした。このような理由で関心を持つようになったのが、仏教の「地獄図」でした。人間ではない姿の獄卒たちが炎の中に罪人を追い込み苦しめる場面を表現した寺院の壁画の前に、長い間立っていた記憶が今も鮮明です。そこには数多くの苦痛と残酷さがあり、その場面を見る私の心は穏やか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しかし、この「暗いもの」たちは、人生の均衡のために必然的に探究すべき存在だという思いから、観察を止めることができませんでした。
死、地獄、苦痛、炎……
その後ずっと、すべての平和の片隅に小さな「地獄」を置いてきました。怒りの感情を解脱へと昇華させた日本の「明王」像に関心を持つようになったのも、自然な流れでした。そんな中、偶然展覧会のポスターを通じて、鎌倉時代の仏教彫刻の巨匠・"運慶"を知りました。彼の作品には爆発的な感情と力がありました。私が数十年間一度も出会ったことのない、冥界(冥界)のエネルギーを宿していました。昨年10月、私は彼の作品を直接見るために東京へと向かいました。これがKALAYAMAの直接的なきっかけとなりました。
以下は、上野の博物館の展示会場で、運慶の作品の前で記録したメモです:
「弥勒坐像の表情は慈悲深くない。目の前にいる者を見透かすような洞察の眼差し。その肌は滑らかではない。顔のあちこちに筆のタッチのように散らばった金色の光が、両領域の支配者であると宣言しているかのようで、現実世界の泥沼と天国を行き来する生を包み込んでいる。
弥勒の左に立つ僧侶——世親菩薩像の目には涙のような輝きがある。彼は弥勒坐像を見つめながら不安に震えているようだ。心配、恐怖、そして畏敬……この目に宿る光沢が、艶消しの全身と対比されてあまりにも多くの物語を伝える。無光の中の有光、その悲しみと生動——それが持つ数多くの感情について。
これらの像には生命がない。しかし、どんな人間よりも生きている。生きていないことによって、彼らは消えることのない永遠の生命力を得たのだ。」


What is the value of a body that does not move?
I wanted to observe 'eternal things' through divine statues. After appreciating Japanese Buddhist statues, I headed to the Forbidden City, Yonghe Temple, and Baiyun Temple in Beijing. There was a long-standing question that seemed impossible to resolve except at this moment—the question of 'the possibility of doll art' that transcends human beings.
Shortly after graduating from fashion design school, I worked on a designer's collection team. It was a place that created human-scale garments, offering various experimental opportunities that couldn't be applied to ready-to-wear clothing—a place unconfined, where one could transcend the boundaries of 'ordinary clothing.' However, there I witnessed several limitations inherent in garments worn by people. One of them was 'the moving model.'
The fact that the wearer moves is effective for sculptural presentation, but simultaneously means many constraints. When selecting structure, materials, and techniques, anything that interferes with 'movement,' or delicate materials and techniques that don't harmonize with or cannot withstand movement, cannot be used no matter how sculpturally beautiful they are. Having craved unrestricted freedom through garment creation, I came to focus on doll art to challenge beyond the limits of 'clothing.'
At Yonghe Temple in Beijing, there are various Buddhist statues originating from Tibetan Buddhism. They are partially modeled after humans but are sculpturally and ontologically not human—evident in their unusual number of limbs, blue skin, and animal-like faces. The garments and ornaments they wear are equally extraordinary. The surfaces flowing over their bodies, hems defying gravity, and delicate decorations settling like snowflakes form an inseparable relationship with the divine body, creating an ideal aura. Viewing these works frozen in perfect posture, I recalled the models I worked with at BLACKSATURN—dolls as subjects containing a beauty that humans cannot possess, the possibility of that 'motionless' existence.
Long ago, in the Paleolithic era, our ancestors created the first dolls filled with earnest wishes. Throughout long history, dolls became mediators connecting humans and the world at the boundary between death and life. Dolls were objects that realized human imagination across countless realms—land, sea, and sky; good and evil; human and animal; this world and the next. Had I not discovered dolls and remained in the human realm, I might not have gained the conviction that 'I can go anywhere.'
BLACKSATURN's first series, "PLUTO" and "BLACK STAR," also began from this imagination. If dolls then meant beautiful models to me, the divine statues I encountered late last year handed me the enormous task of 'sculptural challenges beyond human garments.' In this sense, the journey to completing "KALAYAMA" and the support of everyone who watched over this work will remain an unforgettable record in BLACKSATURN's journey.
不动之躯的价值是什么?
我想通过神像观察"永恒之物"。欣赏完日本的佛像后,我前往了北京的紫禁城、雍和宫和白云观。因为有一个似乎只有此时才能解决的长久疑问——关于超越人类的"人偶艺术的可能性"问题。
时装设计专业毕业后不久,我曾在某设计师的系列团队工作过。那是一个制作人体比例服装的地方,有着无法应用于成衣的各种实验机会——一个不受束缚的地方,可以超越"普通服装"的界限。然而,我在那里目睹了人类穿着服装所固有的诸多限制。其中之一就是"移动的模特"。
穿着主体的移动虽然对造型呈现有效,但同时也意味着许多限制。因为在选择结构、材料和技法时,无论造型上多么美丽,那些妨碍"动作"的,或者与动作不协调、无法承受动作的精致材料和技法都无法使用。渴望通过服装创作获得无限制自由的我,为了挑战超越"服装"的界限,开始专注于人偶艺术。
北京的雍和宫,那里有源自藏传佛教的各种佛像。它们部分模仿人类,但在造型上或本体论上并非人类——从不寻常的手臂数量、蓝色皮肤、动物般的面孔等就可以看出。它们穿着的服装和装饰同样非凡。身体上流动的面料、违抗重力的衣摆、如雪花般落下的精致装饰,与神圣的身体形成不可分割的关系,营造出理想的氛围。观看这些以完美姿态定格的作品时,我想起了与BLACKSATURN合作的模特们——作为承载人类无法拥有的某种美的主体的人偶,那种"不动"的存在的可能性。
很久很久以前,旧石器时代的祖先们怀着殷切的愿望创造了最初的人偶。在漫长的历史中,人偶成为了在死亡与生命边界连接人类与世界的媒介。人偶是在陆地、海洋、天空,善与恶,人与动物,现世与来世等无数领域实现人类想象力的物体。如果没有发现人偶而停留在人类领域,也许就不会产生"可以去往任何地方"的确信。
BLACKSATURN的第一个系列《PLUTO(冥王)》和《BLACK STAR(黑星)》也是从这种想象出发的。如果当时人偶对我而言意味着美丽的模特,那么去年年底遇到的神像则给我提出了"超越人类服装的造型挑战"这一巨大课题。从这个意义上说,完成《KALAYAMA》的旅程,以及关注这部作品的各位的支持,将成为BLACKSATURN旅程中难以忘怀的记录。
'움직이지 않는 신체의 가치는 무엇일까요?
저는 신상을 통해 '영원한 것'들을 관찰하고 싶었습니다. 일본의 불상들을 감상한 후, 저는 북경의 자금성과 용화사, 그리고 백운관으로 향했습니다. 이때가 아니면 해결할 수 없을 듯한 오랜 의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사람을 넘어서는 '인형예술의 가능성'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저는 패션디자인과를 졸업한 직후 모 디자이너의 컬렉션 팀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사람 스케일의 의상을 만드는 곳이었어요. 그곳에서는 기성복에는 적용할 수 없는 다양한 실험 기회가 있었습니다. 평범한 옷의 경계를 넘을 수 있는—갇히지 않은 곳이었지요. 하지만 저는 그곳에서 사람이 착용하는 의상이 지닌 여러 한계들을 목격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움직이는 모델'이었습니다.
착용 주체가 움직인다는 것은 조형적 연출에 효과적이지만, 동시에 많은 제약을 의미합니다. 구조와 재료, 기법을 선택할 때 '움직임'을 방해하는 것, 혹은 그 움직임과 어울리지 않거나 움직임을 견딜 수 없는 섬세한 재료와 기법들은 조형적으로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의상 창작을 통해 제약 없는 자유를 갈구했던 저는, '의상'의 한계를 넘어서는 도전을 위해 인형 예술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베이징의 용화사, 그곳에는 티벳 불교에서 기원한 다양한 불상이 있습니다. 그들은 부분적으로 인간을 본떴지만, 조형적으로 혹은 존재론적으로 인간이 아닙니다. 평범하지 않은 팔다리의 개수, 푸른 피부, 동물적인 얼굴 등에서도 알 수 있지요. 그들이 걸친 의상과 장식들 역시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몸 위를 흐르는 면과 중력을 거스르는 자락들, 눈꽃같이 내려앉은 섬세한 장식들은 신성한 신체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으며 이상적인 아우라를 자아냅니다. 이 완벽한 자태로 멈춘 작품들을 보며, 저는 BLACKSATURN과 함께한 모델들을 떠올렸습니다. 사람이 지닐 수 없는 어떤 아름다움을 담은 주체로서의 인형, 그 '움직이지 않는'존재의 가능성에 대해서요.
까마득한 옛날, 구석기 시대의 조상들은 간절한 소망을 담아 최초의 인형을 만들었습니다. 기나긴 역사 속에서 인형은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인간과 세계를 연결하는 매개가 되었지요. 인형은 육지와 바다와 하늘, 선과 악, 인간과 동물, 이승과 저승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영역에서 인간의 상상력을 실현하는 오브제였습니다. 인형을 발견하지 않고 사람의 영역에 머물렀다면, '어디로도 향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BLACKSATURN의 첫 번째 시리즈인 「PLUTO(플루토)」와 「BLACK STAR(흑성)」역시 이러한 상상에서 출발했습니다. 당시 저에게 인형이 아름다운 모델의 의미였다면, 작년 말 마주한 신상들은 나에게 '인간의 의상을 넘어서는 조형적 도전'이라는 거대한 과제를 건네주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KALAYAMA(칼라야마)」를 완성하기까지의 여정, 그리고 이 작품을 지켜봐주신 여러분의 응원은 BLACKSATURN의 여정에서 잊지못할 기록으로 남을 것입니다.
動かない身体の価値とは何でしょうか?
私は神像を通じて「永遠なるもの」を観察したかったのです。日本の仏像を鑑賞した後、私は北京の紫禁城、雍和宮、そして白雲観へと向かいました。今でなければ解決できないような長年の疑問があったからです。それは人間を超える「人形芸術の可能性」に関する問題でした。
私はファッションデザイン科を卒業した直後、あるデザイナーのコレクションチームで働いた経験があります。人間スケールの衣装を作る場所でした。そこでは既製服には適用できない様々な実験の機会がありました。「普通の服」の境界を超えることができる——閉じ込められていない場所でした。しかし私はそこで、人が着用する衣装が持つ様々な限界を目の当たりにしました。その一つが「動くモデル」でした。
着用主体が動くということは造形的演出に効果的ですが、同時に多くの制約を意味します。構造と素材、技法を選択する際、「動き」を妨げるもの、あるいはその動きと調和しない、または動きに耐えられない繊細な素材や技法は、造形的にどれほど美しくても使用できないからです。衣装創作を通じて制約のない自由を渇望していた私は、「衣装」の限界を超える挑戦のために人形芸術に集中するようになりました。
北京の雍和宮、そこにはチベット仏教に起源を持つ様々な仏像があります。彼らは部分的に人間を模していますが、造形的にあるいは存在論的に人間ではありません。普通ではない手足の数、青い肌、動物的な顔などからも分かります。彼らが纏う衣装や装飾も普通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体の上を流れる面と重力に逆らう裾、雪の花のように降り積もる繊細な装飾は、神聖な身体と不可分の関係を結びながら理想的なオーラを醸し出します。この完璧な姿で止まった作品を見ながら、私はBLACKSATURNと共にしたモデルたちを思い浮かべました。人間が持ち得ない何らかの美しさを宿す主体としての人形、その「動かない」存在の可能性についてです。
遥か昔、旧石器時代の祖先たちは切実な願いを込めて最初の人形を作りました。長い歴史の中で人形は死と生の境界で人間と世界を結ぶ媒介となりました。人形は陸と海と空、善と悪、人間と動物、この世とあの世に至るまで数多くの領域で人間の想像力を実現するオブジェでした。人形を発見せず人間の領域に留まっていたら、「どこへでも向かうことができる」という確信が得られなかったかもしれません。
BLACKSATURNの最初のシリーズである「PLUTO」と「BLACK STAR」もこのような想像から出発しました。当時私にとって人形が美しいモデルの意味だったとすれば、昨年末に出会った神像は私に「人間の衣装を超える造形的挑戦」という巨大な課題を手渡してくれました。このような意味で「KALAYAMA」を完成させるまでの旅程、そしてこの作品を見守ってくださった皆様の応援は、BLACKSATURNの旅程で忘れられない記録として残るでしょう。

[ The color of KALAYAMA - Eternally Burning Fire, "Burnt Sienna" ]
The red used in the lining of "Kalayama's" cloak and gemstone decorations is not a vivid red, but a reddish-brown—close to "Burnt Sienna."
'Sienna' is a name derived from the soil of the city of Siena in Tuscany, Italy. 'Burnt Sienna' refers to the state where this primordial earth has been fired to transform its properties and color. In traditional Korean art, this color resembles the traditional pigment called 'seokganju (石間朱)', which was primarily used to paint building pillars. It was incorruptible earth and a color of벽사 (byeoksa—warding off evil spirits). This reddish-brown resembles the color of temple pillars beside the paintings of hell I saw in childhood. It was not the color of comfortable earth, but the color of burning earth infused with fire. It was also "the color of rusted blades and armor" I saw in museums. Despite being oxidized over long years, this redness still contains the energy of fire—a color I have loved for a very long time. If primary red is 'erupting energy', then Burnt Sienna is 'controlled power'. This color is not a blazing flame, but rather "the color of hardened earth left behind where fire has swept through." This is also the message I wanted to convey through the redness of "KALAYAMA."
< KALAYAMA - 永恒燃烧的火焰,"焦赭色" >
"Kalayama"斗篷内衬和宝石装饰所使用的红色并非鲜艳的红色,而是红褐色——接近"焦赭色(Burnt Sienna)"。"Sienna(赭色)"这个名字源于意大利托斯卡纳地区锡耶纳(Siena)城市的土壤。"Burnt Sienna(焦赭色)"指的是将这种原始土壤用火焙烧,使其性质和色彩发生变化的状态。在韩国传统美术中,这种颜色与被称为"石间朱"的传统颜料相似,主要用于涂刷建筑物的柱子。它是不朽的土壤,也是驱邪避祟的颜色。这种红褐色很像我童年时在地狱图旁看到的寺庙柱子的颜色。那不是安稳土壤的颜色,而是蕴含着火焰、燃烧着的土壤的颜色。同时,它也是我在博物馆看到的"生锈刀刃与铠甲的颜色"。尽管经过漫长岁月的氧化,这种红色依然蕴含着火的气息,是我长久以来深爱的颜色。如果说原色的红色是"喷涌的能量",那么焦赭色就是"被控制的力量"。这种颜色不是熊熊燃烧的火焰,而是"火焰席卷过后留下的坚硬土壤"的颜色。这也是我想通过"KALAYAMA"的红色所传达的信息。
< KALAYAMA - 영원히 타오르는 불, "번트시에나" >
"칼라야마"의 망토 안감과 원석 장식에 사용한 붉은색은 선명한 빨강이 아닌 붉은 갈색 - "번트 시에나"에 가깝습니다. '시에나'는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도시 '시에나(Siena)'의 흙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번트 시에나(Burnt Sienna)'는 이 원시의 흙을 불에 태워 성질과 색채를 변성시킨 상태를 의미합니다. 한국 전통 미술에서 이 색은 '석간주(石間朱)'라 불리는 전통 안료와 유사하며, 건물의 기둥을 칠하는 데 주로 쓰였습니다. 썩지 않는 흙이자, 악귀를 쫓아내는 벽사(辟邪)의 색이었지요. 이 붉은 갈색은 어린 시절에 본 지옥도 옆 - 사찰의 기둥 색을 닮았습니다. 그것은 안락한 흙의 색이 아니라, 불을 머금은 타오르는 흙의 색이었습니다. 또한, 박물관에서 본 "녹슨 칼날과 철갑의 색"이기도 했습니다. 긴 세월에 산화되었음에도 여전히 불의 기운을 품고 있는 이 붉음을, 정말 오랫동안 좋아했습니다. 원색의 빨강이 '분출하는 에너지'라면, 번트 시에나는 '통제된 힘'입니다. 이 색은 불타오르는 불꽃이 아니라, "불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단단한 흙"의 색이지요. 이는 제가 "KALAYAMA"에 담고 싶었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KALAYAMA - 永遠に燃え続ける炎、"バーントシエナ" >
「カラヤマ」のマントの裏地と原石装飾に使用された赤色は、鮮やかな赤ではなく、赤褐色——「バーントシエナ」に近い色です。 「シエナ」は、イタリアのトスカーナ地方の都市「シエナ(Siena)」の土に由来する名前です。「バーントシエナ(Burnt Sienna)」は、この原始の土を火で焼いて性質と色彩を変性させた状態を意味します。 韓国の伝統美術では、この色は「石間朱(ソッカンジュ)」と呼ばれる伝統顔料に似ており、建物の柱を塗るのに主に使われました。腐らない土であり、悪鬼を追い払う辟邪の色でもありました。 この赤褐色は、幼い頃に見た地獄図の隣——寺院の柱の色に似ています。それは安らかな土の色ではなく、火を含んだ燃える土の色でした。また、博物館で見た「錆びた刀身と鉄甲の色」でもありました。長い歳月を経て酸化されても、なお火の気配を宿しているこの赤を、私は本当に長い間愛してきました。 原色の赤が「噴出するエネルギー」なら、バーントシエナは「制御された力」です。この色は燃え上がる炎ではなく、「火が吹き荒れた場所に残った硬い土」の色です。これこそ、私が「KALAYAMA」に込めたかったメッセージでもあります。
KALAYAMA – Where Purifying Fire Transcends the Limits of Life
[ Studies of Divine Garment Form ]
These are one-month croquis project conducted prior to the full design development of KALAYAMA, aimed at exploring the sculptural core of the costume embodied by deities. The sketches are based on observations and reinterpretations of garments worn by various divine figures, including Buddhist statues.
这是在正式开始 KALAYAMA 设计之前,为探索神像所承载的服装造型核心而进行的为期一个月的速写研究项目。这些草图源自对包括佛像在内的多种神像服饰的观察与再诠释。
본격적으로 칼라야마를 디자인하기 전, 신상이 지닌 의상의 조형적 코어를 탐구하기 위해 한 달간 진행한 크로키 프로젝트입니다. 불상을 비롯한 다양한 신상들이 착용한 의상 관찰하고 재해석한 스케치들입니다.
これは KALAYAMA の本格的なデザインに着手する前に、神像が宿す衣装の造形的コアを探るため、約一か月間にわたって行われたクロッキープロジェクトです。仏像を含むさまざまな神像が纏う衣装を観察し、再解釈したスケッチを収録しています。
[ The Birth Story of KALAYAMA ]
The sale of KALAYAMA has officially concluded.
However, as this work marked a significant turning point for me as a creator, it felt insufficient to end it with a simple full stop. For this reason, I wish to leave a record of the personal memories that formed the foundation of the piece—memories that could not be contained within the earlier concept descriptions.
The origin of KALAYAMA lies in long-held tastes and experiences from my childhood. Influenced by my parents, I frequently visited museums, historical sites, and Buddhist temples from a young age. The southern region of the Korean Peninsula where I grew up preserved its historical relics and artifacts relatively well compared to the metropolitan area, offering an abundance of things to observe.
Among them, the most familiar presence was that of Buddhist statues. Introduced during the Three Kingdoms period and later adopted as the state religion during the Goryeo dynasty, Buddhist art is inseparable from Korean identity. As a result, countless works emerged, forming a distinctly Korean tradition of Buddhist sculpture.
Korean Buddhist statues typically bear gentle smiles or silent expressions, their postures calm and unmoving. Neither enraged nor exuberant, they can be seen as visualizations of nirvana—a state in which emotional fluctuation has ceased. While this consistent composure may present a gift of peace to some, it became a source of doubt for me as a child filled with varied thoughts and emotions.
“Humans experience joy, anger, and sorrow. But if these statues are shaped like humans, why do they all look so uniformly dull?”
By my teenage years, the “serene peace” offered by these precious, tranquil artifacts had already reached a lethal dose.
KALAYAMA 的销售已正式结束。
然而,这件作品作为创作者生涯中的重要分水岭,仅以句号收尾仍让我感到遗憾。因此,我希望在此留下那些未能写入既有概念说明、却构成作品根基的个人记忆。
KALAYAMA 的起点源于我长久以来的审美倾向与童年经历。自幼受到父母影响,我频繁造访博物馆、历史遗址与佛教寺院。我成长的韩国南部地区,相较首都圈,保留了更多历史遗迹与文物原貌,也因此拥有极为丰富的观察对象。
其中最为熟悉的,便是佛像。佛教美术自三国时代传入韩国,并在高丽时期成为国教,其发展几乎与韩国的文化认同密不可分。由此诞生了大量作品,也形成了具有高度独立性的韩国佛教美术体系。
韩国佛像大多带着含蓄的微笑或沉默的神情,姿态静止安然。它们既不愤怒,也不纵情欢笑,可视为情感波动已然止息的“涅槃(Nirvana)”之视觉化呈现。这种始终如一的姿态,或许是和平的赠礼,但对于思绪纷繁的童年时期的我而言,却成为怀疑的对象。
“人类有喜悦、愤怒和悲伤。可这些佛像明明长着人的样子,为什么看起来却始终如此单调乏味?”
到了青春期,那些“珍贵、宁静而美丽”的遗物所传递的“安稳的和平”,对我而言早已达到致死剂量。
KALAYAMA의 판매는 공식적으로 종료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창작자로서 귀중한 분기점이었기에, 이대로 마침표를 찍기에는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앞서 선보인 컨셉 설명에 담지 못했지만, 작품의 토대가 된 개인적인 기억들을 남기고자 합니다.
KALAYAMA의 시작은 오래된 취향과 유년기의 경험이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영향으로 박물관과 유적지, 그리고 불교 사찰을 자주 방문했습니다. 제가 나고 자란 한반도의 남쪽 지방은 수도권에 비하면 비교적 유적과 유물의 원형이 잘 보존된 편이었고, 그 덕분에 볼거리가 아주 많았습니다.
그중 가장 익숙했던 것은 '불상'이었습니다. 한국의 불교미술은 삼국시대에 유입되어 고려에 이르러 국교로도 채택되는 등, 한국의 정체성과 분리 불가능한 상생 관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만큼 불교미술 작품들이 많았고, 독자성이 깊은 한국만의 불교 미술이 발달했습니다.
한국의 불상들은 대체로 은은하게 웃거나 침묵하는 표정을 지녔으며, 동작 역시 정적입니다. 분노하지도, 박장대소하지도 않는 상태로, 감정의 파동이 멈춘 ‘해탈(Nirvana)’의 시각화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한결같은 자태는 누군가에게는 평화의 선물이겠지만,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품은 어린 저에게는 의심의 대상이었습니다.
'인간에게는 기쁨도, 분노도, 슬픔도 있어. 하지만 왜 이 불상들은 생긴건 인간을 닮았으면서 한결같이 지루한 모양이지?'
청소년기의 저에게 귀하고 고요하며 아름다운 유물들이 던지는 '안온한 평화'는 이미 치사량에 달해 있었습니다.
KALAYAMA の販売は正式に終了しました。
しかし本作は、創作者としての私にとって重要な分岐点となった作品であり、このまま句点を打つには惜しいと感じています。そこで、これまでのコンセプト説明には収めきれなかった、本作の礎となった個人的な記憶を記しておこうと思います。
KALAYAMA の出発点は、長年にわたる嗜好と幼少期の体験にありました。幼い頃から両親の影響で、私は博物館や史跡、そして仏教寺院を頻繁に訪れていました。私が育った朝鮮半島南部の地域は、首都圏と比べて遺跡や遺物の原形が比較的よく保存されており、その分、目にするものも非常に多かったのです。
中でも最も身近な存在だったのが「仏像」でした。韓国の仏教美術は三国時代に伝来し、高麗時代には国教として受容されるなど、韓国のアイデンティティと切り離せない関係にあります。その結果、多くの作品が生まれ、独自性の高い韓国仏教美術が発展しました。
韓国の仏像は、穏やかな微笑みや沈黙の表情を湛え、動きのない静かな姿勢をとるものが大半です。怒りも歓喜も表さず、感情の波動が停止した状態――すなわち「解脱(Nirvana)」の視覚化とも言えるでしょう。この一貫した佇まいは、ある者にとっては平和の贈り物かもしれませんが、多様な感情と思考を抱えていた幼い私にとっては、疑問の対象でした。
「人間には喜びも、怒りも、悲しみもある。なのに、姿は人に似ているのに、どうしてこれらの仏像はみんな同じように退屈に見えるのだろう?」
思春期の私にとって、「尊く、静かで、美しい遺物」がもたらす“安穏な平和”は、すでに致死量に達していたのです。
When we realize that the world before our eyes is not everything but merely a part, we become curious about the rest.
When we feast on peace, we dream of chaos.
because we are destined to live, we wonder about death.
In my childhood, I too could not be satisfied with a single world. For this reason, I became interested in Buddhist 'Hell Paintings (地獄図).' I vividly remember standing for a long time before temple murals depicting jailers in non-human forms driving sinners into flames and tormenting them. There was so much suffering and cruelty, and my heart was not at ease watching those scenes. However, I couldn't stop observing, believing that these 'dark things' were beings that must inevitably be explored for the balance of life.
Death, hell, suffering, flames...
Since then, I've always kept small 'hells' in a corner of every peace. It was a natural progression that I became interested in Japan's 'Myō-ō (明王)' statues, which sublimate the emotion of anger into enlightenment (解脱).
Then, by chance, I discovered Unkei (運慶), a master of Buddhist sculpture from Japan's Kamakura period (鎌倉時代), through an exhibition poster. His works possessed explosive emotion and power. They held the energy of the netherworld(冥界) that I had never encountered in decades. Last October, I traveled to Tokyo to see his works in person. This became the direct catalyst for KALAYAMA.
Below is a memo I recorded at the Ueno Museum exhibition hall, in front of Unkei's works:
"The expression of the seated Maitreya(弥勒坐像) is not compassionate. Eyes of insight that seem to pierce through whoever stands before it. His skin is not smooth. The golden light scattered across the face like brush strokes seems to declare him the ruler of both realms, encompassing a life that traverses between mud of real world and heaven.
The eyes of the monk standing to the left of Maitreya—the Seshin Bodhisattva (世親菩薩) statue—hold a tear-like radiance. He seems to tremble with anxiety while gazing at the seated Maitreya. Worry, fear, and wonder... This luster in the eyes, contrasted with the matte finish of the entire body, tells so many stories. Gloss within matte, that sorrow and vitality—about the countless emotions they may hold.
These statues have no life. Yet they are more alive than any human. By not being alive, they have gained eternal, inextinguishable vitality."
当你意识到眼前的世界并非全部,而只是一部分时,你会对其余的世界产生好奇。当你饱食和平,便会梦见混沌,
因为注定要活完一生,所以会对死亡感到好奇。
童年时的我也无法满足于单一的世界。正因如此,我开始对佛教的"地狱图"产生兴趣。我至今仍清晰记得,曾在寺庙壁画前久久伫立,那些壁画描绘着非人形态的狱卒将罪人驱入火焰中折磨的场景。那里有无数的痛苦与残酷,观看这些场景时我的心情并不平静。然而,我认为这些"黑暗之物"是为了生命的平衡而必须探究的存在,因此无法停止观察。
死亡、地狱、痛苦、火焰……
此后,我一直在每一份和平的一隅放置着小小的"地狱"。对愤怒之情升华为解脱的"明王"像产生兴趣,也是自然而然的过程。
后来偶然通过展览海报,我认识了日本镰仓时代佛教雕刻的巨匠运庆(運慶)。他的作品蕴含着爆发性的情感与力量,拥有我数十年来从未见过的冥界能量。去年10月,我前往东京亲眼观赏他的作品。这成为了KALAYAMA的直接契机。
以下是我在上野博物馆展览现场,在运庆作品前记录的笔记:
"弥勒坐像的表情并不慈悲。那洞察的眼神仿佛要看穿站在面前的人。他的皮肤并不光滑。脸上星星点点如笔触般散布的金光,仿佛宣告着他是两界的支配者,包容着往来于现实世界的泥泞与天堂之间的生命。
站在弥勒左侧的僧侣——世亲菩萨像的眼中有着泪光般的光彩。他似乎注视着弥勒坐像,因不安而颤抖。担忧、恐惧与惊叹……眼中的这抹光泽,与无光的全身形成对比,传递着太多的故事。无光中的有光,那悲伤与生动——关于它所蕴含的无数情感。
这些雕像没有生命,却比任何人类都更有生气。正因为没有生命,它们获得了永不熄灭的永恒生命力。"
눈앞의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일부에 불과하다는 걸 알면, 나머지 세상이 궁금해집니다. 평화를 폭식하면 혼돈을 꿈꾸고, 평생을 살아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죽음을 궁금해합니다.
어린 시절의 저 역시, 하나의 세계로는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불교의 '지옥도'였습니다. 인간이 아닌 형상의 옥졸들이 화염 속에 죄인을 몰아넣고 괴롭히는 장면을 표현한 사찰의 벽화앞에 한참을 서 있었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합니다. 그곳에 수많은 고통과 잔인함이 있었고, 그 장면을 보는 제 마음은 편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어두운 것'들은 삶의 균형을 위해 필연적으로 탐구해야 할 존재들이라는 생각에 관찰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죽음, 지옥, 고통, 화염...
그 후 줄곧 평화의 한켠에 작은 '지옥'들을 놓아두었습니다. 분노의 감정을 해탈로 승화한 일본의 '명왕'상들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지요. 그러다 우연히 전시 포스터를 통해 '운케이'라는 일본 가마쿠라시대 불교 조각의 거장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폭발적인 감정과 힘이 있었습니다. 제가 수 십 년 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명계의 에너지를 품고 있었습니다. 작년 10월, 저는 그의 작품을 직접 보기 위해 도쿄로 향했습니다. 이것이 KALAYAMA의 직접적 계기가 되었지요.
아래는 우에노 박물관의 전시회장에서, 운케이의 작품 앞에서 기록한 메모입니다.
" 미륵좌상의 표정은 자비롭지 않다. 앞에있는 자를 궤뚫어보는듯한 통찰의 눈빛. 그의 피부는 매끄럽지 않다. 얼굴 군데군데 붓터치처럼 맺힌 금빛이 진흙탕-천당을 오가는 생을 아우르며 두 영역의 지배자라 선언하는 듯 하다.
미륵상의 왼쪽에 선 승려-세신보살상의 눈에는 눈물같은 광채가 있다. 그는 미륵좌상을 보며 불안에 떠는 듯 하다. 걱정, 공포와 경이... 이 눈에 맺힌 광택이 무광의 전신과 대비되어 너무나도 많은 이야기를 전한다. 무광 속의 유광, 그 슬픔과 생동-그것이 지닐 수많은 감정에 대해.
이 상들에는 생명이 없다. 하지만 그 어떤 인간보다 살아 있다. 살아있지 않음으로써, 그들은 꺼지지 않는 영원한 생명력을 얻었다."
目の前の世界が全てではなく一部に過ぎないと知れば、残りの世界が気になります。平和を貪り食えば混沌を夢見て、生涯生きていかなければならないからこそ死を知りたくなります。
幼い頃の私も、一つの世界では満足できませんでした。このような理由で関心を持つようになったのが、仏教の「地獄図」でした。人間ではない姿の獄卒たちが炎の中に罪人を追い込み苦しめる場面を表現した寺院の壁画の前に、長い間立っていた記憶が今も鮮明です。そこには数多くの苦痛と残酷さがあり、その場面を見る私の心は穏やか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しかし、この「暗いもの」たちは、人生の均衡のために必然的に探究すべき存在だという思いから、観察を止めることができませんでした。
死、地獄、苦痛、炎……
その後ずっと、すべての平和の片隅に小さな「地獄」を置いてきました。怒りの感情を解脱へと昇華させた日本の「明王」像に関心を持つようになったのも、自然な流れでした。そんな中、偶然展覧会のポスターを通じて、鎌倉時代の仏教彫刻の巨匠・"運慶"を知りました。彼の作品には爆発的な感情と力がありました。私が数十年間一度も出会ったことのない、冥界(冥界)のエネルギーを宿していました。昨年10月、私は彼の作品を直接見るために東京へと向かいました。これがKALAYAMAの直接的なきっかけとなりました。
以下は、上野の博物館の展示会場で、運慶の作品の前で記録したメモです:
「弥勒坐像の表情は慈悲深くない。目の前にいる者を見透かすような洞察の眼差し。その肌は滑らかではない。顔のあちこちに筆のタッチのように散らばった金色の光が、両領域の支配者であると宣言しているかのようで、現実世界の泥沼と天国を行き来する生を包み込んでいる。
弥勒の左に立つ僧侶——世親菩薩像の目には涙のような輝きがある。彼は弥勒坐像を見つめながら不安に震えているようだ。心配、恐怖、そして畏敬……この目に宿る光沢が、艶消しの全身と対比されてあまりにも多くの物語を伝える。無光の中の有光、その悲しみと生動——それが持つ数多くの感情について。
これらの像には生命がない。しかし、どんな人間よりも生きている。生きていないことによって、彼らは消えることのない永遠の生命力を得たのだ。」
What is the value of a body that does not move?
I wanted to observe 'eternal things' through divine statues. After appreciating Japanese Buddhist statues, I headed to the Forbidden City, Yonghe Temple, and Baiyun Temple in Beijing. There was a long-standing question that seemed impossible to resolve except at this moment—the question of 'the possibility of doll art' that transcends human beings.
Shortly after graduating from fashion design school, I worked on a designer's collection team. It was a place that created human-scale garments, offering various experimental opportunities that couldn't be applied to ready-to-wear clothing—a place unconfined, where one could transcend the boundaries of 'ordinary clothing.' However, there I witnessed several limitations inherent in garments worn by people. One of them was 'the moving model.'
The fact that the wearer moves is effective for sculptural presentation, but simultaneously means many constraints. When selecting structure, materials, and techniques, anything that interferes with 'movement,' or delicate materials and techniques that don't harmonize with or cannot withstand movement, cannot be used no matter how sculpturally beautiful they are. Having craved unrestricted freedom through garment creation, I came to focus on doll art to challenge beyond the limits of 'clothing.'
At Yonghe Temple in Beijing, there are various Buddhist statues originating from Tibetan Buddhism. They are partially modeled after humans but are sculpturally and ontologically not human—evident in their unusual number of limbs, blue skin, and animal-like faces. The garments and ornaments they wear are equally extraordinary. The surfaces flowing over their bodies, hems defying gravity, and delicate decorations settling like snowflakes form an inseparable relationship with the divine body, creating an ideal aura. Viewing these works frozen in perfect posture, I recalled the models I worked with at BLACKSATURN—dolls as subjects containing a beauty that humans cannot possess, the possibility of that 'motionless' existence.
Long ago, in the Paleolithic era, our ancestors created the first dolls filled with earnest wishes. Throughout long history, dolls became mediators connecting humans and the world at the boundary between death and life. Dolls were objects that realized human imagination across countless realms—land, sea, and sky; good and evil; human and animal; this world and the next. Had I not discovered dolls and remained in the human realm, I might not have gained the conviction that 'I can go anywhere.'
BLACKSATURN's first series, "PLUTO" and "BLACK STAR," also began from this imagination. If dolls then meant beautiful models to me, the divine statues I encountered late last year handed me the enormous task of 'sculptural challenges beyond human garments.' In this sense, the journey to completing "KALAYAMA" and the support of everyone who watched over this work will remain an unforgettable record in BLACKSATURN's journey.
不动之躯的价值是什么?
我想通过神像观察"永恒之物"。欣赏完日本的佛像后,我前往了北京的紫禁城、雍和宫和白云观。因为有一个似乎只有此时才能解决的长久疑问——关于超越人类的"人偶艺术的可能性"问题。
时装设计专业毕业后不久,我曾在某设计师的系列团队工作过。那是一个制作人体比例服装的地方,有着无法应用于成衣的各种实验机会——一个不受束缚的地方,可以超越"普通服装"的界限。然而,我在那里目睹了人类穿着服装所固有的诸多限制。其中之一就是"移动的模特"。
穿着主体的移动虽然对造型呈现有效,但同时也意味着许多限制。因为在选择结构、材料和技法时,无论造型上多么美丽,那些妨碍"动作"的,或者与动作不协调、无法承受动作的精致材料和技法都无法使用。渴望通过服装创作获得无限制自由的我,为了挑战超越"服装"的界限,开始专注于人偶艺术。
北京的雍和宫,那里有源自藏传佛教的各种佛像。它们部分模仿人类,但在造型上或本体论上并非人类——从不寻常的手臂数量、蓝色皮肤、动物般的面孔等就可以看出。它们穿着的服装和装饰同样非凡。身体上流动的面料、违抗重力的衣摆、如雪花般落下的精致装饰,与神圣的身体形成不可分割的关系,营造出理想的氛围。观看这些以完美姿态定格的作品时,我想起了与BLACKSATURN合作的模特们——作为承载人类无法拥有的某种美的主体的人偶,那种"不动"的存在的可能性。
很久很久以前,旧石器时代的祖先们怀着殷切的愿望创造了最初的人偶。在漫长的历史中,人偶成为了在死亡与生命边界连接人类与世界的媒介。人偶是在陆地、海洋、天空,善与恶,人与动物,现世与来世等无数领域实现人类想象力的物体。如果没有发现人偶而停留在人类领域,也许就不会产生"可以去往任何地方"的确信。
BLACKSATURN的第一个系列《PLUTO(冥王)》和《BLACK STAR(黑星)》也是从这种想象出发的。如果当时人偶对我而言意味着美丽的模特,那么去年年底遇到的神像则给我提出了"超越人类服装的造型挑战"这一巨大课题。从这个意义上说,完成《KALAYAMA》的旅程,以及关注这部作品的各位的支持,将成为BLACKSATURN旅程中难以忘怀的记录。
'움직이지 않는 신체의 가치는 무엇일까요?
저는 신상을 통해 '영원한 것'들을 관찰하고 싶었습니다. 일본의 불상들을 감상한 후, 저는 북경의 자금성과 용화사, 그리고 백운관으로 향했습니다. 이때가 아니면 해결할 수 없을 듯한 오랜 의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사람을 넘어서는 '인형예술의 가능성'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저는 패션디자인과를 졸업한 직후 모 디자이너의 컬렉션 팀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사람 스케일의 의상을 만드는 곳이었어요. 그곳에서는 기성복에는 적용할 수 없는 다양한 실험 기회가 있었습니다. 평범한 옷의 경계를 넘을 수 있는—갇히지 않은 곳이었지요. 하지만 저는 그곳에서 사람이 착용하는 의상이 지닌 여러 한계들을 목격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움직이는 모델'이었습니다.
착용 주체가 움직인다는 것은 조형적 연출에 효과적이지만, 동시에 많은 제약을 의미합니다. 구조와 재료, 기법을 선택할 때 '움직임'을 방해하는 것, 혹은 그 움직임과 어울리지 않거나 움직임을 견딜 수 없는 섬세한 재료와 기법들은 조형적으로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의상 창작을 통해 제약 없는 자유를 갈구했던 저는, '의상'의 한계를 넘어서는 도전을 위해 인형 예술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베이징의 용화사, 그곳에는 티벳 불교에서 기원한 다양한 불상이 있습니다. 그들은 부분적으로 인간을 본떴지만, 조형적으로 혹은 존재론적으로 인간이 아닙니다. 평범하지 않은 팔다리의 개수, 푸른 피부, 동물적인 얼굴 등에서도 알 수 있지요. 그들이 걸친 의상과 장식들 역시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몸 위를 흐르는 면과 중력을 거스르는 자락들, 눈꽃같이 내려앉은 섬세한 장식들은 신성한 신체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으며 이상적인 아우라를 자아냅니다. 이 완벽한 자태로 멈춘 작품들을 보며, 저는 BLACKSATURN과 함께한 모델들을 떠올렸습니다. 사람이 지닐 수 없는 어떤 아름다움을 담은 주체로서의 인형, 그 '움직이지 않는'존재의 가능성에 대해서요.
까마득한 옛날, 구석기 시대의 조상들은 간절한 소망을 담아 최초의 인형을 만들었습니다. 기나긴 역사 속에서 인형은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인간과 세계를 연결하는 매개가 되었지요. 인형은 육지와 바다와 하늘, 선과 악, 인간과 동물, 이승과 저승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영역에서 인간의 상상력을 실현하는 오브제였습니다. 인형을 발견하지 않고 사람의 영역에 머물렀다면, '어디로도 향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BLACKSATURN의 첫 번째 시리즈인 「PLUTO(플루토)」와 「BLACK STAR(흑성)」역시 이러한 상상에서 출발했습니다. 당시 저에게 인형이 아름다운 모델의 의미였다면, 작년 말 마주한 신상들은 나에게 '인간의 의상을 넘어서는 조형적 도전'이라는 거대한 과제를 건네주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KALAYAMA(칼라야마)」를 완성하기까지의 여정, 그리고 이 작품을 지켜봐주신 여러분의 응원은 BLACKSATURN의 여정에서 잊지못할 기록으로 남을 것입니다.
動かない身体の価値とは何でしょうか?
私は神像を通じて「永遠なるもの」を観察したかったのです。日本の仏像を鑑賞した後、私は北京の紫禁城、雍和宮、そして白雲観へと向かいました。今でなければ解決できないような長年の疑問があったからです。それは人間を超える「人形芸術の可能性」に関する問題でした。
私はファッションデザイン科を卒業した直後、あるデザイナーのコレクションチームで働いた経験があります。人間スケールの衣装を作る場所でした。そこでは既製服には適用できない様々な実験の機会がありました。「普通の服」の境界を超えることができる——閉じ込められていない場所でした。しかし私はそこで、人が着用する衣装が持つ様々な限界を目の当たりにしました。その一つが「動くモデル」でした。
着用主体が動くということは造形的演出に効果的ですが、同時に多くの制約を意味します。構造と素材、技法を選択する際、「動き」を妨げるもの、あるいはその動きと調和しない、または動きに耐えられない繊細な素材や技法は、造形的にどれほど美しくても使用できないからです。衣装創作を通じて制約のない自由を渇望していた私は、「衣装」の限界を超える挑戦のために人形芸術に集中するようになりました。
北京の雍和宮、そこにはチベット仏教に起源を持つ様々な仏像があります。彼らは部分的に人間を模していますが、造形的にあるいは存在論的に人間ではありません。普通ではない手足の数、青い肌、動物的な顔などからも分かります。彼らが纏う衣装や装飾も普通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体の上を流れる面と重力に逆らう裾、雪の花のように降り積もる繊細な装飾は、神聖な身体と不可分の関係を結びながら理想的なオーラを醸し出します。この完璧な姿で止まった作品を見ながら、私はBLACKSATURNと共にしたモデルたちを思い浮かべました。人間が持ち得ない何らかの美しさを宿す主体としての人形、その「動かない」存在の可能性についてです。
遥か昔、旧石器時代の祖先たちは切実な願いを込めて最初の人形を作りました。長い歴史の中で人形は死と生の境界で人間と世界を結ぶ媒介となりました。人形は陸と海と空、善と悪、人間と動物、この世とあの世に至るまで数多くの領域で人間の想像力を実現するオブジェでした。人形を発見せず人間の領域に留まっていたら、「どこへでも向かうことができる」という確信が得られなかったかもしれません。
BLACKSATURNの最初のシリーズである「PLUTO」と「BLACK STAR」もこのような想像から出発しました。当時私にとって人形が美しいモデルの意味だったとすれば、昨年末に出会った神像は私に「人間の衣装を超える造形的挑戦」という巨大な課題を手渡してくれました。このような意味で「KALAYAMA」を完成させるまでの旅程、そしてこの作品を見守ってくださった皆様の応援は、BLACKSATURNの旅程で忘れられない記録として残るでしょう。
[ The color of KALAYAMA - Eternally Burning Fire, "Burnt Sienna" ]
The red used in the lining of "Kalayama's" cloak and gemstone decorations is not a vivid red, but a reddish-brown—close to "Burnt Sienna."
'Sienna' is a name derived from the soil of the city of Siena in Tuscany, Italy. 'Burnt Sienna' refers to the state where this primordial earth has been fired to transform its properties and color. In traditional Korean art, this color resembles the traditional pigment called 'seokganju (石間朱)', which was primarily used to paint building pillars. It was incorruptible earth and a color of벽사 (byeoksa—warding off evil spirits). This reddish-brown resembles the color of temple pillars beside the paintings of hell I saw in childhood. It was not the color of comfortable earth, but the color of burning earth infused with fire. It was also "the color of rusted blades and armor" I saw in museums. Despite being oxidized over long years, this redness still contains the energy of fire—a color I have loved for a very long time. If primary red is 'erupting energy', then Burnt Sienna is 'controlled power'. This color is not a blazing flame, but rather "the color of hardened earth left behind where fire has swept through." This is also the message I wanted to convey through the redness of "KALAYAMA."
< KALAYAMA - 永恒燃烧的火焰,"焦赭色" >
"Kalayama"斗篷内衬和宝石装饰所使用的红色并非鲜艳的红色,而是红褐色——接近"焦赭色(Burnt Sienna)"。"Sienna(赭色)"这个名字源于意大利托斯卡纳地区锡耶纳(Siena)城市的土壤。"Burnt Sienna(焦赭色)"指的是将这种原始土壤用火焙烧,使其性质和色彩发生变化的状态。在韩国传统美术中,这种颜色与被称为"石间朱"的传统颜料相似,主要用于涂刷建筑物的柱子。它是不朽的土壤,也是驱邪避祟的颜色。这种红褐色很像我童年时在地狱图旁看到的寺庙柱子的颜色。那不是安稳土壤的颜色,而是蕴含着火焰、燃烧着的土壤的颜色。同时,它也是我在博物馆看到的"生锈刀刃与铠甲的颜色"。尽管经过漫长岁月的氧化,这种红色依然蕴含着火的气息,是我长久以来深爱的颜色。如果说原色的红色是"喷涌的能量",那么焦赭色就是"被控制的力量"。这种颜色不是熊熊燃烧的火焰,而是"火焰席卷过后留下的坚硬土壤"的颜色。这也是我想通过"KALAYAMA"的红色所传达的信息。
< KALAYAMA - 영원히 타오르는 불, "번트시에나" >
"칼라야마"의 망토 안감과 원석 장식에 사용한 붉은색은 선명한 빨강이 아닌 붉은 갈색 - "번트 시에나"에 가깝습니다. '시에나'는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도시 '시에나(Siena)'의 흙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번트 시에나(Burnt Sienna)'는 이 원시의 흙을 불에 태워 성질과 색채를 변성시킨 상태를 의미합니다. 한국 전통 미술에서 이 색은 '석간주(石間朱)'라 불리는 전통 안료와 유사하며, 건물의 기둥을 칠하는 데 주로 쓰였습니다. 썩지 않는 흙이자, 악귀를 쫓아내는 벽사(辟邪)의 색이었지요. 이 붉은 갈색은 어린 시절에 본 지옥도 옆 - 사찰의 기둥 색을 닮았습니다. 그것은 안락한 흙의 색이 아니라, 불을 머금은 타오르는 흙의 색이었습니다. 또한, 박물관에서 본 "녹슨 칼날과 철갑의 색"이기도 했습니다. 긴 세월에 산화되었음에도 여전히 불의 기운을 품고 있는 이 붉음을, 정말 오랫동안 좋아했습니다. 원색의 빨강이 '분출하는 에너지'라면, 번트 시에나는 '통제된 힘'입니다. 이 색은 불타오르는 불꽃이 아니라, "불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단단한 흙"의 색이지요. 이는 제가 "KALAYAMA"에 담고 싶었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KALAYAMA - 永遠に燃え続ける炎、"バーントシエナ" >
「カラヤマ」のマントの裏地と原石装飾に使用された赤色は、鮮やかな赤ではなく、赤褐色——「バーントシエナ」に近い色です。 「シエナ」は、イタリアのトスカーナ地方の都市「シエナ(Siena)」の土に由来する名前です。「バーントシエナ(Burnt Sienna)」は、この原始の土を火で焼いて性質と色彩を変性させた状態を意味します。 韓国の伝統美術では、この色は「石間朱(ソッカンジュ)」と呼ばれる伝統顔料に似ており、建物の柱を塗るのに主に使われました。腐らない土であり、悪鬼を追い払う辟邪の色でもありました。 この赤褐色は、幼い頃に見た地獄図の隣——寺院の柱の色に似ています。それは安らかな土の色ではなく、火を含んだ燃える土の色でした。また、博物館で見た「錆びた刀身と鉄甲の色」でもありました。長い歳月を経て酸化されても、なお火の気配を宿しているこの赤を、私は本当に長い間愛してきました。 原色の赤が「噴出するエネルギー」なら、バーントシエナは「制御された力」です。この色は燃え上がる炎ではなく、「火が吹き荒れた場所に残った硬い土」の色です。これこそ、私が「KALAYAMA」に込めたかったメッセージでもあります。